[장서각 산책] 우리나라의 중국 유학(留學) 전통과 국제적 인재 양성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6/24 [16:17]

코로나19 창궐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지 넉 달째다. 온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정부의 기민한 대처 등 한국식 대응 방법은 방역의 모범 사례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코로나 사태가 조속히 종식돼 사회적·국제적 관계망이 더욱 긴밀해지기를바랄 뿐이다. 거리두기가 오래될수록 그 사회는 역동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조선 학자들 중에 조선 사회의 폐쇄성에 대해 일갈한 인물이 여럿이다. 이들 대부분은 그 원인을 중국 유학(留學)의 단절에서 찾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중국유학 전통은 그 유서가 깊다. 삼국의 자제는 당나라 국자감에서 각국 유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학문에 매진했고 발해와 통일신라도 경쟁적으로 유학생을 보냈다. 신라 김운경이 빈공과에 처음 합격한 이래 최치원, 최승우, 박인범 등 걸출한 인재가 다수 배출됐다.
 
고려도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에 학생을 적극 파견해 선진 문물을 체득했다. 송나라 국자감의 최초 외국인입학자와 급제자, 명나라 제과(制科)의 최초 급제자가 모두 고려 유학생이었다. 고려 학생은 유학 체험을 통해 최신 학술과 문예 사조를 접하는 한편 국제적 안목과 중국어 실력까지 겸비한 인재로 성장했다.
 
원·명 제과 응시생 태반이 예부시 장원 출신으로서 엄정한 제과 1차 시험을 거쳐 선발된 수재였다. 이들은 제과에 급제한 뒤 중원에서 벼슬하며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교유했다. 귀국 후에는 외교 부문과 서적 편찬을 전담했고 교육과 과거를 통해 인재를 길렀다. 여말에 이색같은 대문호가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371년 김도(金濤)가 명 제과에 합격한 것을 끝으로중국 유학은 재개되지 않았다. 명 사신 살해 사건, 공민왕 시해 등이 겹치면서 양국 관계가 경색됐고, 주원장이 죽기 전에 조선에 대한 불편한 심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고려 조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학의 염원은 물거품이 됐다.
 
조선에서도 명나라에 유학생을 보내고 싶어 세종·세조·중종이 외교문서를 통해 유학을 공식 요청했으나 명 측은 매번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거부했다. 그런 와중에도 안남, 섬라, 유구, 일본등 다른 번국들은 계속 유학생을 파견하고 있었다.
 
▲ 정약용, 『여유당전서』 권11, <기예론>     © 비전성남
 
중국 유학의 전통과 단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조선학자들은 대부분 실학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이익은 명 유학이 차단되고 양국 간 황화수창(皇華酬唱 : 중국 사신과 시를 주고받는 것)의 전통마저 사라지자, 조선 선비의 의기가 편협해지고 재주와 안목이 위축됐으며 문학과 학문이 침체됐다고 진단했다.
 
박지원은 역대 중국 유학의 효용과 조선의 비루한 사풍(士風)을 대비하더니 지금이라도 청나라 국학에 자제를 입학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약용은 조선의 문체적 오류가 유학 단절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하는 한편 부국강병을 위해 중국 유학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설파했다.
 
국권이 기울어 가는 시기에 김윤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오백 년간 문무대신의 재주가 전 왕조보다 크게 못하고, 문예의 경우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못한다. 지금 기준으로 살펴보면 삼국시대만도 못하니 어째서인가? 자기 소견에 갇힌 채 스스로 만족하며 남에게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지금은 문을 닫고 독학한 지 오백 년이나 되었다. 배운 것이 차츰 잘못되고 전해들은 것에 오류가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오류로 다시 오류를 답습하면서도 그 잘못을 몰라서 일상의 사소한 편지조차 글자의 의미가 잘못된 것이 많으니 구차하기 그지없다. 심한 경우는 문장을 어떻게 짓는지도 모르면서 자칭 소중화라고 떠벌리고 있으니 부끄럽지 않은가!
 
조선의 학문이 위축되고 폐쇄적이라는 점은 이상의 문인들의 공통된 입장이거니와 그 주요 원인을 대부분 중국 유학의 단절에서 찾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이나, 유학 전통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면 정치·경제·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적잖은 변화를 견인했을 것이다. 일군의 실학자들이 유학생파견 전통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중국 유학의 단절을 개탄한 것은 그 때문이다.

자국의 인재를 해외로 적극 보내 견문을 확장하고 선진 문화를 흡수하는 것이 부국강병의 초석이라는 주장은 작금의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한국 청년들 가운데 수많은 세계인이 배출되길 기대한다.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또 다른 BTS가 세계무대를 호령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