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이야기] 밟혀야 살아남는 강인한 들풀, 질경이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0/07/23 [14:14]

▲ 중앙공원 보도블록 사이에서 자란 질경이     © 비전성남
 
여름, 우리 주변 빈터엔 빼곡하게 자리 잡은 들풀들이 거침없이 자라는데, 이중 밟혀야 살아남는 강인한 들풀이 있다. 질경이다.

질경이는 질경잇과 질경이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생태적으로는 아무나 살 수 없는 밟히는 길을 선택해서 그곳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땅속줄기를 이용해 길가 빈터를 넓게 차지하며 자라는 질경이는 잎이 넓지만 밟아도 쉽게 상처를 입지 않는데 잎을 잡아뜯어보면, 잎줄(葉脈) 부분이 백색 실처럼 드러난다. 고무줄처럼 탄력이 있으면서 아주 질기다.
 
질경이는 줄기는 없지만 잎자루가 잎과 길이가 비슷할 정도로 길어서 시금치와 유사하며 꽃은 가운데에서 길게 나오는데 8월 한여름에 씨앗을 맺는다.
 
질경이의 학명은 ‘Plantago asiatica L.’로 ‘발바닥으로 옮긴다’는 뜻으로 속명 플란타고(Plantago)는 밟힘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질경이 씨앗에는 종이 기저귀에 사용하는 것과 흡사한 화학구조를 가진 젤리 모양의 물질이 있어 물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고 달라붙는다.
 
질경이는 이 성질을 이용해 씨앗을 퍼뜨린다. 사람이나 동물의 발에 붙어 새로운 거처를 찾아간다.
 
독일에서는 ‘길의 파수꾼’이라고 부르는데 등산로를 따라 산에 올라간다는 뜻이다. 길이 있는 한, 질경이는 밟혀서 자라고, 밟혀서 자기 씨앗을 옮겨 번식한다.
 
질경이는 인가 부근에 흔히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에 옛날에는 산속에서 길을 헤매다가 질경이를 발견하면 인가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지표(指標) 식물로 여겼다. 마치 산속에서 나침반이나 지도처럼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생명력이 매우 강해 마차 바퀴나 사람의 발에 짓밟혀도 다시 살아난다고 해 질긴 목숨이라는 뜻에서 질경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길에서 사는 생태성으로부터 유래하는 ‘길경이’는 한자로 ‘차전초’라고 불리는데 중국에서 관련 일화가 전해진다.
 
한나라 광무제 때 ‘마무’라는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산 넘고 강 건너 전쟁터로 가던 중, 지치고 식량과 물이 부족해 많은 병사들이 죽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병사들은 아랫배가 붓고 눈이 쑥 들어가고 피오줌을 누는 습열병으로 고생하게 됐다. 말도 피오줌을 누면서 하나둘 쓰러졌다.
 
그러던 중 말 한 마리가 생기를 되찾고 맑은 오줌을 누었는데 그 말은 돼지귀처럼 생긴 풀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병사들은 곧 그 풀을 뜯어서 국을 끓여 먹었고 나아서 본래 모습을 찾았다. 그 뒤로 사람들은 이 고마운 풀을 수레바퀴 앞에서 처음 발견했기에 차전초(車前草)라고 불렀다고 한다.

봄엔 맛있는 나물로 자신을 내주고, 산속에서 길을 헤매는 나그네에겐 나침반 역할도 해주며 전쟁터로 향하던 병사들을 병에서 구해준 고마운 식물이 질경이다. 우리의 판단으로 이 작은 들풀을 쉽게 잡초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