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춘섭 화각장(경기 29호)
색(色)을 가진 궁중가구의 진수, 화각(華角)공예
국빈들에게 선물로 전달될 정도로 명성 높아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생활 속 화각 만들고 싶어”
“혹시 화각을 아시나요? 보신 적은요?!”
한춘섭 화각장(62·무형문화재 경기 29호)이 기자를 만나서 한 첫마디다. 그는 40년이 넘도록 화각공예를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화각이란 단어조차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화각은 얇게 깎은 소의 뿔 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서 목판 표면에 붙이고 옻칠을 해 아름답게 장식한 것을 말하며, 이러한 화각을 이용해서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을‘화각장’이라 한다. 화각공예는 고려시대의 나전 칠기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시대의 왕실공예이며, 한국공예의 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독특한 공예 기법이다.
화각 공예의 기원은 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중국·일본으로도 전래됐으나 제작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중국과 일본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전통공예다. 그럼에도 화각공예가 이처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은 예전부터 재료가 귀하고 공정이 까다로워 왕실이나 특수 귀족층에 애용돼 온 귀족 공예이기 때문이다.
한씨가 화각공예에 매료돼, 당시 유일하게 화각공예 기술을 갖고 있던 故음일천 선생의 공방에 들어가 기능을 전수받기 시작한 나이는 17세, 화각에 뛰어든 지 올해로 45년이 된다.
화각공예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탓에 나전칠기만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아 그 맥을 잇고 있는 한씨 역시 늘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다. 한씨는“그때는 돈보다 아름답고 우아한 화각의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인내했다”며“새로운 문양과 디자인 개발에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45년이 흘러 여기까지 왔네요”라며 웃는다.
화각의 주재료인 소의 뿔은 주로 3∼5년생 한우 황소뿔을 사용하는데, 황소뿔은 속이 비고 투명도가 오래 유지되기 때문이다. 큰 틀의 작업공정만 26번, 공정마다 복잡하고 섬세해 대작은 1년까지도 걸리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으로 작품에 따라 200만 원에서 3천만 원에 이른다.
특히 한씨의 작품은 화각의 약점인 내구성을 보완 제작해,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메르켈 독일 총리,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등 대통령의 국빈 방문 때나 한국을 방문한 국빈들에게 선물로 전달될 정도로 명성이 높다. 한씨의 대를 이어 전수조교로 활동 중인 아들 한기덕(37) 씨의 아이디어로 2년 전 상대원 금강펜테
리움 A동 908호에 문을 연 한씨의 화각공예 전시장. 그곳에는 화각이 들어간 장·사방탁자·문갑·장식장 등이 우아하고 도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또 작은 예물함, 경대, 필통, 명함지갑과 반짇고리 등 대중적인 소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쯤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기덕 씨는 어렵게 마련한 전시장에서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화각을 널리 알리고, 실생활에서 사용 할 수 있는 생활 속 화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전수자로서 지난 9년 동안 전통의 맥을 잇는 수업만큼이나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판로 개척에 애썼다. 그러나“작품가격이 고가인 지라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높은 재료비와 임대료, 인건비 등을 계산하면 국가적인 지원이나 도나 시의 지원 없이는 원가를 낮추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주요 목적 중 하나가 교육사업임에도 현재 우리지역에 전통의 맥을 잇고 교육할 수 있는 전수관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깝고 아쉽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공예, 화각. 한춘섭 화각장의 작품은 영화‘미인도’‘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비롯해 TV드라마‘이산’‘대왕 세종’등에 협찬했고, 최근 MBC에서 방영중인‘동이’에서도 아름답고 우아한 색감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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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숙 기자 chung09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