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시장에서 희망대 파출소까지 가는 손님이었어요. 룸미러로 보는데 신발을 벗고 차를 타더라고요. 아, 성호시장에서 새 신발을 사고 헌 신발은 버리고 가는가 보다 했죠. 그런데 내리면서 신발이 없다는 거예요. 신발 버리고 탄 거 아니었냐고 하니까 굉장히 민망해하더라고요.” 1978년 택시 운행을 시작해 43년 경력을 가진 이성구, 33년 경력 이상남 기사의 이야기와 함께 43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택시 기본요금이 500원 정도였다. 지금은 사라진 합승이 공공연히 이뤄지던 때라 세 명 이상, 여러 명의 승객이 모여 있으면 택시는 손님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합승 손님을 태우면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도 꾀를 써서 한 사 람이 택시를 잡는 척하고 있다가 택시를 잡았다 싶으면 일행이 나타나 탑승했다고 한다. 일명 ‘총알택시’가 유행할 때도 있었다. “구종점(현 단대오거리)에서 영등포, 을지로5가로 가는 손님들을 태웠어요. 손으로 목적지를 표시했죠.”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펴면 을지로5가, 엄지와 검지를 맞대 동그라미를 만들면 영등포를 가는 거였다. 손가락 모양에 맞는 손님끼리 맞춰 네다섯 명까지 합승이 이뤄졌다. 당시 시민들의 출퇴근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80년 오일파동 당시 기름값은 리터당 700원 정도였다. 성남 택시는 모두 휘발유차였고, 주유소도 3~4곳밖에 없어서 줄을 서서 기름을 넣어야 했다. 1983~84년, LPG 가스차가 보급되면서 성남에도 가스 충전소가 들어섰다. 제일 먼저 생긴 곳이 성남문화원 입구에 있는 대기가스 충전소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대기가스 충전소는 택시기사들의 쉼터 역할을 했다. 가스비는 리터당 178원 정도로 휘발유보다 많이 저렴했다. 택시의 차종도 변했다. K303, 로얄, 포니1, 제미니, 르망, 엑셀, 스텔라, 소나타, 그랜저 등 여러 차종으로 바뀌며 손님을 태웠다. 지금 개인택시 중에는 소나타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상남 기사는 “1984년에 개인택시를 시작했다. 처음 탄 차가 포니2로 33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당시 개인택시는 모두 노란색이었고 노란색 셔츠에 모자도 썼다”고 말한다. 지금과 다르게 택시의 색깔과 근무복이 정해져 있었다. 회사택시도 근무복이 있고 회사마다 색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택시의 색이나 근무복 규정은 약 20년 전에 폐지됐지만 빨강과 검정 단색 상의 제한, 슬리퍼를 신고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규정으로 삼고 있다. 택시기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시간이 흐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차창으로 과거에서 현재를 보며 지나는 듯했다. 분당 신도시가 생겼을 때 입주민들이 택시 잡기 힘들었다는 당시의 하소연에는 ‘신도시다 보니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기 때문에 분당 가기를 꺼려했다’고 말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차종은 바뀌고 도로의 모습도 달라졌다. 길가에 서서 손을 들고 택시를 세우는 모습보다는 예약된 승객을 택시가 기다리는 시대로 변했다. 택시비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는 모습에서 신용카드, 스마트폰 앱, 지역사랑 상품권으로 결제가 가능한 시대에 와있다. 기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과거의 그 어딘가에서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타고 지금에 와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20년, 30년 후 거리를 달리고 있을 택시와 승객, 차창 밖으로 지나갈 도시의 풍경이 궁금해진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 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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