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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소환하다] 쇠를 다루는 곳, 쇠를 만지는 사람

충북대장간과 정형구(문화재수리기능자) 대장장이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2/24 [10:05]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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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년 전통을 이어온 충북대장간, 정형구(55) 대장장이     © 비전성남

 

▲ 대장장이의 망치     © 비전성남

 
어머니가 사용하던 모양의 칼을 자꾸만 매만졌다. 공장에서 나온 매끈한 칼과 달리 대장간에서 만든 칼은 뭉뚝한 모양에 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릴 적 대장간을 본 일이 없어 나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었던 그곳에서 추억 하나를 꺼냈다. 음식을 준비하던 어머니,  무뎌진 칼을 숫돌에 쓱쓱 갈아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전국에 몇 곳 없는 대장간을 성남에서 발견했다. 사극에서 봤던 대장장이가 그곳에 있었다. 성남에서 약65년 전통을 이어온 충북대장간, 정형구(55) 대장장이다.

충북대장간은 박오서 대장장이를 필두로 2대 정형구대장장이로 이어왔다. 볼링선수로 활동하던 정형구 씨는 쉬는 날이면 장인어른이 운영하던 충북대장간에서 일을 돕고 배웠다.
 
적성에 맞고 쇠 벼리는 솜씨가 좋은 정형구 씨는 1998년부터 대장간을 이어받아 대장장이가 됐다. 지금은 경복궁·창덕궁 보수 공사, 여주 영릉 전통 한식 철물 보수 공사에 참여한 ‘문화재수리기능자’로 활동을 겸하고 있다.
 

▲ 성남 충북대장간의 외관     © 비전성남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처럼 할 수 없어요.” 충북대장간 정형구 대장장이는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철물에 자신감을 보였다.
 
최저 온도 700도에서 쇠에 따라 1400도까지 상승하는 화덕의 열기에서 달군 쇠를 커다란 파워해머로 매질한 뒤 다시 불에 달궈 모루에 얹고 망치로 두드려 모양을 만들었다.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쇠를 매질해야 한다.
 
세밀한 작업까지 파워해머에 맡길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불에 달군 뒤 기름 담금질로 열을 식히고 모래에 묻어 기름을 닦아 냈다.
 
쇠를 달궈 모양을 만드는 단조과정을 통해 쇠는 호미가 되기도 하고, 정이 되기도, 문고리가 되기도 한다. 전에는 모두 손으로 하던 것을 세밀한 작업 외엔 기계의 힘을 빌린다.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할 때는 일이 힘들어 오래 버티는 사람이 없었어요. 오전에 일하던 사람이 점심 먹으러 간 후 사라지는 게 다반사였죠. 찾지도 않았어요.”
 
불덩어리 상태인 쇠를 매질하는 작업은 인부 서넛이 동시에 해야 하는 작업이다. 상상 밖으로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에 으레 그러려니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 힘든 매질 작업을 지금은 파워해머가 대신한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건축하는 사람들이 주고객이다. 분당에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충북대장간에선 농경사회의 필수품인 각종 철물 농기구를 제작했다.
 
벼농사, 밭농사 등 농사를 짓던 곳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대장간의 주업무는 농기구에서 건설 공구 제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자취를 감춘, 소와 맷돌에 사용되는 철물     © 비전성남

 

▲ 대장장이 부부가 모루에 올려 놓고 불에 달궈진 쇠로 세밀한 작업 중     © 비전성남

 
쇠는 용도에 따라 다르다. 건설 공구가 강한 힘을 가진 철이라면 농기구는 중간에 해당한다. 문화재 수리 등 전통 한옥에서 필요한 문고리, 장신구 등은 비교적 연하고 부드러운 철을 사용한다. 불의 온도나 제작 과정 또한 강하게, 약하게, 세밀하게 쓰임새에 따라 이뤄진다.
 
취재 중 건설업자로 보이는 손님이 끝이 무뎌진 공구(정)를 들고 와 잘 두드려진 정으로 바꿔 사 갔다. 대장간에서는 무뎌진 물건을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갈아 주기도 한다.
 
태평역 근처에 있던 충북대장간은 소음 관련 민원이 잦아 작업장을 경기도 광주로 옮기기도 했었다. 존폐위기에 직면했던 성남 유일의 대장간, 대장장이의 망치질에 힘이 빠지는 대목이다.
 
지난해 모란에 가까스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성남에서 전통을 지키고 싶다. 대를 잇고, 또 대를 이은 충북대장간의 망치 소리가 성남에서 오래도록 울려 퍼지는 게 소원”이라는 정형구 대장장이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