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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흐르는 선율] 아리엘 도르프만 『죽음과 소녀』

&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4번 라단조, D.810> ‘죽음과 소녀’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21/02/24 [12:49]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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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죽음과 소녀』(창비, 2007)는 칠레 출신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아리엘 도르프만의 1990년 작품으로, 1990년 칠레 민주정부 출범 이전 17년간 지속된 군부독재정권의 인권 탄압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후, 독재정권의 만행을 밝히고 기록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지만 화합과 평화라는 이름 아래 군부 쿠데타 희생자들의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던, 칠레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고문과 성폭행으로 유린된 여성인권 문제는 ‘빠울리나’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폭로되는데, 그녀가 떠올리는 끔찍한 고문의 시간이 무대에서 재현되는 순간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가 흐른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네 대의 현악기 선율과 이어서 들리는 여리고 가냘픈 제1 바이올린 선율에서 고문관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빠울리나와 잔혹한 고문을 준비하며 슈베르트의 음악을 즐기는 고문관의 모습이 떠올라 희곡 속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는 아름다움보다는 오히려 통증이 느껴지는 곡이다.
 
곡 제목처럼 죽음의 사신을 마주한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슈베르트의 동명의 가곡(D.531)에서 그 선율을 가져와 만들어졌다. 어린 소녀와 죽음의 사신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가곡의 선율은 현악사중주 네 개의 악장 중 두 번째 악장에 그대로 옮겨졌다.
 
겁먹은 어린 소녀에게 자신의 품 안에서 조용히 잠들라며 앙상한 손을 내미는 죽음의 사자. 납치당해 끌려온 빠울리나에게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틀어주며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고문관 의사.
 
빠울리나의 기억과 함께 되살아난 과거의 사실들은 이 모두를 끝까지 부정하는 의사에 의해 우리에게 더욱더 많은 질문으로 다가온다.
 
군부 쿠데타와 군사독재정권의 경험뿐만 아니라 더 이전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짓밟힌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지닌 한국이기에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새 출발을 위해 용서하라는 강요 아닌 강요 앞에서 “왜 뭔가를 양보해야 할 때가 되면 양보를 해야 하는 건 우리여야 하지”, “한 사건, 단 한 사건에만 정의를 행사하는 것이라도”를  외치는 빠울리나의 목소리는 단지 그녀만의 목소리는 아닐 것이다.
 

▲ 유튜브 연결   © 비전성남


※ 유튜브에 ‘비전성남 책속선율 죽음과소녀’를 입력하면 관련 음악과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책 『죽음과 소녀』 보유 도서관은 중앙·중원·수정·판교·구미·분당 도서관이다.

취재 조윤수 기자 choyoons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