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는 하루에 도장 100개를 만들었어요. 밤을 새워 일했어요.”
성진인재 박성길(73) 대표는 18세에 도장 재료를 납품하는 공장에 취직해 일을 배웠다. 군 전역 후 성남에 자리를 잡고 도장 재료 판매와 함께 도장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50년이 흘렀다.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가게 내부 벽면이 누렇게 바래있다.
그 위로는 도장과 관련해 취득한 여러 특허권이 가게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지금 성남에서 손으로 도장을 파는 곳은 없어요. 저도 손님이 원하면 손으로 새기지만 기계로 도장을 새깁니다.”
손으로 이름을 새기던 박 대표도 25년 전부터는 기계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도장 새기는 기계를 직접 만들고 특허를 내기도 한 박 대표의 손때 묻은 인장 조각대와 인장 조각칼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장(을) 찍다: 문서에 도장을 찍어 약조를 맺다(표준국어대사전).’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말로 하는 약속이 아닌 문서로 남겨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장을 찍다’는 말은 ‘사인(sign)하다’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 때도 도장을 꾹 눌러 찍었지만 그 자리 또한 사인(서명)이 차지하고 있다.
‘돈은 빌려줘도 도장은 빌려주지 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장은 그 사람의 분신이자 신표로 여겼다. 중요한 계약이 있을 때 챙기는 인감도장에는 특히 그 의미를 크게 뒀다.
졸업, 입학, 취업을 기념해 선물 품목에도 올랐던 도장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급할 때 막 파서, 막 쓴다해서 막도장이라 불리던 목도장이 300원 하던 시절부터 5천 원 하는 지금까지 긴 세월이 흘렀다. 도장이 쓰이는 곳이 줄어드니 성남에 150여 곳 되던 도장가게가 지금은 30곳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박 대표가 보여 준 도장에는 이름 외에 한 획이나 두 획이 더 새겨진 것도 있다. 사주에 따라 획수를 조절해 새긴다고 한다. 또한 이름에 쓰이는 한자의 획수와 사주에 따라 이름 뒤에 신(信), 장(章), 인(印)을 새긴다.
도장이 중요한 계약에 쓰였기 때문인지 도장의 재료 또한 중요했다.
액운을 막아준다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벽조목),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상아, 강인함을 의미하는 무소뿔 재료에 이름을 새기는 사람도 많았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한 그루는 성남의 집 열 채 값이기도 했다. 벽조목 두 조각이 맞부딪치는 소리는 일반 나무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와 달랐다.
빨간 인주를 묻혀 찍은 도장에는 그 사람의 기운이 담겨 있다. 중요한 계약이 잘 성사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가 도장에 같이 새겨진다.
“의미가 남다른 재료에 획수에 맞게끔 새겨진 도장의 덕을 봤다”며 가족과 지인 선물용으로 재주문이 들어올 때면 박 대표는 뿌듯하다.
“도장 업계 일인자를 자부하지만 나이 드니 눈의 초점은 흐려지고 인장 조각대 위의 인장 조각칼이 버거워진다”는 박 대표 앞에서, 손으로 새겨진 도장에 담겨 있는 유일함과 예술성이 너무 먼 옛날이야기로 남겨지는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 이 지면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성남의 모습을 시민과 함께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변에 30년 이상 오래된 이색가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가게, 장인 등이 있으면 비전성남 편집실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31-729-2076~8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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