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동네서점 이매문고는 공예미술학교 ‘신농학당’과 함께 ‘2022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한다.
‘2022 문화예술 행사’는 지역서점 활성화, 문화예술 저변 확대와 인재 발굴을 위해 기획됐으며, 인근 지역 작가·예술가와의 교류, 지역주민에게 문화공간 제공과 교육을 위해 ‘소통과 치유’를 주제로 <창작미술 전시반>과 <북토크>가 열린다.
3월 13일 그 첫 회로, 남궁인 작가의 북콘서트 <제법 안온한 날들>이 열렸다. 남궁인 작가는 응급의학과 의사로 긴박하고 다급한 현장, 거기에서 마주하는 생과 사의 경계, 인간적인 연민과 고민을 안기는 많은 삶과 일생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쓰고 있다.
2016년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제법 안온한 날들』,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공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공저)』 등을 펴냈다.
『제법 안온한 날들』은 작가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지켜본 생과 사의 갈림길, 절박한 생애,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60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제법 안온한 날들> 북콘서트는 한국화가이자 신농학당 교장인 전수민 작가의 사회로 인디가수 이매진(I;magine)의 공연, 남궁인 작가의 강연, 독자와의 대화, 사인회가 진행됐다.
이매진의 첫 곡 ‘상괭이’가 울려퍼지는 순간 오랜만에 느끼는 생생한 선율에 기분이 들떴다.
공연을 마친 이매진도 “올해 첫 공연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것도, 공연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한 명 한 명 얼굴을 바라보며 공연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었다.
남궁인 작가는 막을 수 없는 코로나19가 덮친 응급실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응급실로 실려오는 많은 환자들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온다. 존재하는 고통 중 가장 아프다는 경색(梗塞)이 시작된 26살의 농구선수, 백혈병에 걸린 할머니, 80대 투석환자, 결혼이주 외국인 임산부 등 위급한 환자들이 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오면 그때부터 환자와 병원은 상상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는다.
원인을 찾기 위한 말 몇 마디에도 그때까지 힘들고 외로웠을 생애가 짐작되는 환자들이 있다. 휴대전화와 소지품에는 가족의 흔적이 없었고 외투의 안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오랫동안 육체와 정신의 고통과 절망 속에 살았으니 이제 떠날 수 있게 아무런 치료를 하지 말아달라“고 적혀있는 환자 앞에서는 의사를 떠나 인간적인 연민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잘못된 믿음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를 마주할 때는 과학자로서, 치료자로서,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간이란, 삶이란 무엇인지 회의에 가까운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기도 한다.
남궁인 작가는 에세이를 처음 쓰던 무렵에는 생과 사를 오가는 끔찍하고 절박한 현장에서 고뇌하는 세계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깨닫는 삶과 일상의 의미, 따뜻한 휴머니즘을 전달하는 에세이를 쓰려고 한다.
국제구호개발NGO ‘세이브더 칠드런’ 홍보대사이기도 한 남궁인 작가는 지난해 말 청와대에서 열린 ‘2021 기부·나눔단체 초청 행사’에서 만난 박춘자(92, 성남시 거주) 할머니를 이야기했다.
박 할머니는 남한산성 앞에서 김밥을 팔아 번 돈과 전재산 6억을 기부했다.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이혼당해 홀로 살던 할머니는 40년 전부터 길에 버려진 발달 장애인들을 돌보며 살았다. 지금은 셋방을 빼서 그 보증금마저 기부하고 당신이 기부했던 복지시설이 된 집에서 평생 돌보던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남궁인 작가는 박 할머니를 ‘성자(聖者)’라고 했다. 영부인의 손을 잡은 할머니는 울음을 터트렸고, 할머니의 인사말은 행사장을 울먹이게 했다.
"저는 가난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근근이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돈이 없어 배가 고팠습니다. 배가 고파서 힘들었습니다. 열 살부터 경성역에 나가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돈이 생겨 먹을 걸 사 먹었는데... 먹는 순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게 너무나 좋아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이 행복을 줄 수 있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그 뒤로는 돈만 생기면 남에게 다 주었습니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구십이 넘게 다 주면서 살다가 팔자에 없는 청와대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내밀어 주시는 손을 잡으니, 갑자기 어린 시절 제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의 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귀한 분들 앞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팔십 년 전의 따뜻한 손을 기억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할머니, 그 손 때문에 모든 것을 남에게 내어주신 할머니, 옆자리의 영부인이 가장 크게 울고 계셨다.
그것은 압도적인 감각이었다.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 또한 치열한 선의로 살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여전히 '높은' 무엇인가가 있었고, 앞으로도 일정 지위의 삶을 영위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따뜻한 손을 나눠주기 위해 자신이 얻은 모든 일생을 조용히 헐어서 베풀었다. 구순이 넘는 육신과 이미 모든 것을 기부했다는 사실만큼 당신을 완벽히 증명하는 것이 없었다. 그 패배가 너무 명료해 '봉사'라는 명목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떤 한 생은 지독하고도 무한히 이타적이라 무섭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것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직면했을 때 경험하는 경배일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청와대에서 조우한 것은 화려한 건물이나 높은 사람들도 번듯한 회의도 아니었다. 범인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영혼이 펼쳐놓는 한 세계였다.
[출처] 남궁인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xinsiders/222611194703
남궁인 작가의 강연은 독자와의 대화, 사인회로 이어졌다.
춘천에서 온 독자 김미성 씨는 “좋아하는 작가님을 이렇게 직접 만나서 너무 좋다.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작가님처럼 병원에서 보고 겪는 일들을 글로 쓰려고 한다. 롤모델인 작가님을 만나서 글쓰기 고민도 직접 풀어놓고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며 사인받은 책들을 끌어안았다.
북 콘서트를 진행한 전수민 작가는 이매문고 전경자 대표가 문화공간을 연다고 했을 때 말리기도 하고 걱정도 했지만 전시 기획과 문화행사를 두루두루 지원하고 있다.
“매화나무 두 그루에서 작가들이 전시와 활동을 꾸준히 하고 성남시민들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많이 찾는 것 같다. 이번 행사는 여러 작가님들 마음과 뜻을 모아주셨다. 모두 어려운 상황인데도 선뜻 나서주셔서 고맙고 소중하다”며 “지역 서점들이 책과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전경자 대표는 “서점을 오래할 수 있으며 좋겠다. 우리 직원들도 오래 근무하고 동네 주민들과 즐겁고 의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이번 행사에 함께해 주시는 작가님들과 찾아 주시는 분들이 감사할 뿐이다”라고 했다.
이매문고와 신농학당이 함께하는 ‘2022 문화예술 행사’ 매월 둘째 주 이매문고 복합문화공간 ‘매화나무 두 그루’에서 열린다. ▲ 이매문고: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440/ 031-708-6555
취재 전우선 기자 folojs@hanmail.net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