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8월, 그것도 오후 3시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꽃이 있다.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오후 세 시가 되면 팝콘처럼 팡팡 꽃을 피우는 대청부채(학명: Iris dichotoma)다.
대청부채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오후 3~4시쯤 개화해 밤 9~10시쯤 되면 오므라드는 특징이 있어 ‘신비의 꽃’, ‘오후 3시의 꽃’, ‘생물 시계’ 등으로도 불린다.
대청부채는 우리나라의 대표 식물분류학자인 고(故) 이창복 박사가 1983년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당시 생김새가 범부채와 같다고 해 발견장소인 ‘대청’의 이름을 따 ‘대청부채’란 이름이 탄생했다.
오후 3시 이전에 대청부채를 보면 곧 꽃이 필 것이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3시를 넘어가면 대청부채의 꽃봉오리는 공기를 불어 넣은 듯 빵빵하게 꽃망울을 부풀린다. 그러다가 3시 30분경을 넘어서면서 갑작스레 꽃이 짠~ 하고 피는 것을 목격하면 처음엔 당황스럽다가 그 묘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고 긴 여운이 남는다.
대청부채가 오후 3시에 꽃을 피우는 가장 유력한 이유는 대청부채가 유전적으로 가까운 범부채와 교잡종이 발생하는 걸 막고자 개화 시간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대청부채와 범부채는 염색체 수가 같아 인공적으로 교배하면 교잡종이 생길 수 있는데 범부채가 오전에 꽃을 피우고, 대청부채는 오후에 꽃을 피워 이를 막는다고 한다. 이에 따라 꿀벌들은 범부채는 오전 7~11시에, 대청부채는 오후 4~7시에 집중적으로 방문해 교잡을 막는 것이다.
대청부채는 대청도 외에 백령도, 충남 태안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희귀하게 목격되는 야생식물이다. 보통 햇살 좋은 바닷가 절벽에 존재하거나 수풀 속에 드문드문 숨어있는 탓에 대청부채를 보는 일은 여간 쉽지 않다.
대청부채는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자생지 파괴와 불법 채취, 기후위기 등이 이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주요 위협 원인이다. 대청도가 위치한 인천광역시는 대청부채를 ‘깃대종’으로 지정하고 보전에 힘쓰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성남의 신구대학교식물원 멸종위기원에서 8월이 되면 귀한 대청부채꽃을 볼 수 있다. 멸종위기식물의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신구대학교식물원이 보존에 힘쓰는 12종의 식물 중 하나가 대청부채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8월에, 그것도 하루 중 가장 열기가 뜨거운 시간인 오후 3시에 꽃을 피우는 대청부채꽃을 만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번 시도해보면 대청부채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고 매년 8월이 기다려질 것이다.
취재 김기숙 기자 tokiwife@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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