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와 현재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은 다양하다. 전통 보존에 매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것에 진심인 이들도 있고, 내부 문화를 지키려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외국 문화로부터 배우는 걸 우선시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시급한지 사회적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과연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제기도 적지 않다.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집단 규모로 표출되기도 하는 이런 문제의식은 결국 전통과 새것, 내부와 외부를 함께 바라보려는 시도로 이어지곤 한다.
전통과 새것이 충돌하는 상황은 13-14세기 고려의 역사에서도 찾아진다. 이른바 원 간섭기, 또는 최근에는 몽골 복속기라고도 불리는 시기가 그것이다. 바로 고려시대 후기다.
1231년 시작된 몽골의 침공 및 30여 년간 계속된 전쟁, 그리고 13세기 후반 제국의 정치·경제적 간섭으로 인해, 이 시기는 그야말로 한반도의 암흑기로 간주된다. 20세기 후반 여러 연구자들이 당시 한반도인들의 곤경과 고통에 주목하였다. 다만 그 와중에 이 시기를 살아간 고려인들이 마주했을 현실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했는지는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존재나 원제국 정부의 가혹한 물자 징발, 제국법 사용 압박 및 일부 고려 제도의 강제적 개변 요구가 13세기 후반 고려인들을 괴롭힌 것은 사실이지만, 14세기에 접어들어 광대한 제국의 내·외부 사정이 변하면서 고려와 원제국의 관계도 바뀌게 된다.
혼혈 국왕 충선왕(忠宣王, 1275-1325, 재위 1298; 1308-1313)은 원제국의 제도와 몽골의 전통을 고려의 제도와 정책에 융합시켜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여러 개혁들을 단행하였다. 또 충선왕의 손자 공민왕(恭愍王, 1330년 출생, 재위 1351-1374)은 옛 황제 쿠빌라이(世祖, 재위 1260-1294)의 이른바 ‘오래된 약속[世祖舊制]’을 근거로 현 황제 순제(順帝, 재위 1333-1370)에게 일련의 개혁 사항을 요구해 그를 관철하였다. 모두 13세기 후반에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인데, 고려인들이 제국의 간섭을 견뎌 가며 그런 압박들을 약화시키거나, 심지어 그 상황을 고려에 유리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아낸 데 힘입은 결과였다.
고려의 지식인과 관료들도 이전과는 다른 인식들을 드러내었다. 원 황제가 고려 관료들에게 각종 직함을 하사하면서, 그리고 제국의 과거제도를 대외에 개방하면서 많은 관료들이 고려를 떠나 중국 현지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의 제도를 높이 평가하고 몽골과의 공존을 일상으로 여기던 이들이, 동시에 매우 역설적이게도 그간 위축돼 있던 고려의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알리는 일이나, 한반도의 위상을 제고하는 것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초기 몽골과의 교섭을 주도했던 조인규(趙仁規, 1237-1308)의 묘지명(墓誌銘)에는 그간 그가 역임했던 여러 고려 관직들이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5-1308) 때의 개변 명칭이 아닌 과거 고려 문종(문종, 재위 1046-1083) 당시의 원래 명칭으로 표기돼 있다.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고려와 원제국의 인연이 남달라 한반도인들을 중국의 강남인 및 화북인들과 비교할 수 없으니, 차라리 제국 내에서 위상이 높았던 색목인(色目人)들과 같은 반열로 대해 달라고 제국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최해(崔瀣, 1287-1340)는 1290년대 말 고려를 괴롭혔던 원제국 관료 활리길사(闊里吉思)를 칭송하면서도, 신라와 고려의 명문장들을 수록한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는 문장집을 발간해 제국인들에게 고려의 문화를 알리고자 했다. 그의 문집 <졸고천백(拙藁千百)>에 남아 있는 이 책의 서문을 보면, 그가 후학들에게 고려 전통 문장의 우수성을 환기하며 ‘사람의 머리는 다 같은 것이니 중국 문인들과의 경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음이 주목된다.
이렇듯 13세기 후반의 몽골은 고려인들에게는 정치적 간섭자이자 경제적 포식자, 그리고 문화적으로 별 볼 일 없는 야만족이었지만, 14세기 전반의 원제국은 고려인들에게 정치적 교섭 대상이자 무역 상대방, 그리고 참고할 만한 제도의 보유자였다. 이에 고려인들은 원제국의 간섭은 간섭대로 막아내면서도, 그러한 관계를 통해 고려에 유리한 부분들은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복잡다단한 국제 정세에 한반도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구성원으로서의 한국인들은 전통과 현대, 내부와 외부를 어떻게 조율하고 절충하는 것이 좋을지, 고려 후기의 경험은 생각해 볼 만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대중의 관심이 필요함은 물론,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서도 고민해 볼 만한 문제다.
특별기고 이강한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학 전공)
※ 한국학중앙연구원(https://www.aks.ac.kr):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소재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