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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essay] 엄마의 남자친구

이동현 | 수정구 태평동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02/21 [15:21] | 본문듣기
  • 남자음성 여자음성

엄마의 남자친구
이동현 | 수정구 태평동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산송장이 돼 누워있을 때면,엄마는 꼭 탄천에 같이 산책가자고 졸랐다. 나는 하루 종일 직장 상사와 고객사에 시달려 집에서만큼은 평화롭게 있고 싶은 마음에 늘 방문을 걸어 잠갔는데, 그날은 엄마한테 착한 아들이 돼 보기로 했다. 그런 마음도 잠시, 괜히 나왔나 싶을 정도로 겨울 밤공기는 쌀쌀했고, 신이 난 엄마의 수다와 잔소리에 나는 더 기진맥진했다.
 
“이럴 거면 누나랑 와!”
잔소리를 못 견딘 나는 톡 쏘아붙였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 둘 엄마가 아니었다. 매형으로 화제를 전환하더니 막힌 잔소리를 이어갔다. 엄마 잔소리를 한귀로 흘리면서 ‘다음부터는 절대 안 나가야지’부터 시작해 독립 계획까지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두던 찰나, 엄마는 갑자기 달을 향해 손짓했다. 달빛이 참 근사했다. 엄마는 맑은 달빛이 좋아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아들과 나와서 너무 행복하다며 내 팔짱을 꼈다. 나도 대학시절에는 여자친구와 달구경을 종종 나갔는데, 엄마와는 처음 팔짱을 끼고 달구경을 나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마의 소녀시절은 어땠을까.
“엄마, 연애할 때 아부지랑도 이렇게 종종 나왔어?” 엄마는 “니 아버지는…”으로 시작해 탄천을 한바퀴 다 돌 때까지 아버지 욕(?)을 했지만, 옛날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지 늦게 퇴근한 아버지를 매우 반갑게 맞았다.

사람의 기분은 쉽게 물이 드나 보다. 그날은 평소 몇 마디 안 하던 부자지간에도 술이 한 잔 오가는, 화목한 분위기의 밤이 될 수 있었다. 엄마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무뚝뚝한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보며 잠자리에 들면서 다짐했다.

‘집에 있는 동안이라도 엄마의 남자친구가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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