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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essay] 벚꽃의 꽃말

김예린 | 분당구 야탑동

  • 비전성남 | 기사입력 2019/04/23 [12:46]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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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꽃말
김예린 | 분당구 야탑동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래.”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렇게 가볍게 떠도는 말은 나에게 은근한 압박이 되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 꽃을 보기 전에 머릿속으로 시험날짜가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리기 바빴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하얗게 웃는 벚꽃을 보면 정말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인 게 틀림없어, 하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나였다.

작년, 한창 좋을 나이라던데,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꽃은 만개했지만 시험과 과제는 쌓여 있고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벚꽃의 자리에는 낯선 잎사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봄이 짧네. 푸른 나무를 바라보다가 돌아선 나는 여전히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 다른 미로로 들어서야 했다.
 
그토록 스트레이트 졸업을 꿈꾸던 나는 올해 휴학생이 됐다. 쉴 새 없이 원하지 않는 굴레 속에서 나를 어디론가 흘려보내고 살고 있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휴식기를 가지며 올해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나를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나름대로의 규칙대로 열심히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봄의 흔적이 베란다에 다다랐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탄천으로 벚꽃 구경을 갔다. 탄천길을 걸으며 온전하게 피어 있는 벚꽃을 눈에 가득 담았다. 바닥의 갈변한 꽃잎만 보던 나는 이제야 비로소 봄이 왔음을 알았다. 올해 봄은 너무 고마운 계절이었다. 나에게 중간고사가 아닌 자신의 품을 내주어서, 과하지도 야박하지도 않은 볕을 쬐는 봄이었다.

벚꽃의 꽃말은 어쩌면 잠깐 멈추기 아닐까. 너무 달리지만 말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봄에는, 그래도 된다.
 
 

*독자 수필과 추천도서(원고지 5매 내외, A4 1/2장 내외), 사진(성남지역 풍경·사람들 - 200만 화소 이상)을 모집합니다. 2019년 5월 7일(화)까지 보내주세요(주소·연락처 기재). 채택된 작품은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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