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국사봉 가는 길에 철쭉은 피었을까? 작년에는 너무 일찍 가서 만날 수 없었던 철쭉을 올해는 독자들과 함께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금토동으로 출발했다. 낮은 들녘을 품고 있는 부드러운 능선에 흐드러지고 있는 봄의 색이 늘 마음에 남아 있어 봄이 되면 금토동 앓이를 했다.
지난해의 금토동과 올해 금토동은 많이 달랐다. 판교제2테크노밸리, 공공택지지구 조성으로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누리버스 종점 근처 작은 구멍가게를 보니 ‘이곳에 가게가 있었나?’ 싶고, 사람들이 떠난 빈집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빈집 벽에 쓰인 ‘우리 외갓집, 벽화 그린날’, ‘수복강녕’…. 이 정겨움을 어찌 등지고 떠났을까. 마당에서 저 혼자서도 잘 자라고 있는 대파와 부추, 주인의 손길이 떠난 뒷마당 머위가 빈 우물이 가진 표정처럼 휑하다. 사람들의 귀염을 받으며 자라났을 제비꽃, 민들레…. 키 작은 야생화들이 키 큰 향나무를 향해‘우리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묻는 듯 꽃잎이 하늘을 향해 있다.
마을 앞으로는 달래내로가 지나가고 그 옆으로는 금토천이 흐른다. 외동 1교를 건너니 바깥말(외동)이다. 돌기와가 올려진 오래된 가옥과 그 옆으로는 70년대 농촌 부유의 상징이었던 정미소가 보인다. 정미소의 기계는 멈춘 지 오래지만, 집주인은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듯 대문 틈으로 보이는 마당이 정갈하다. 지붕에는 돌을 얇게 켜서 얹은 돌기와가 올려 있다.
안골(내동)로 발길을 옮겨 안동 권씨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고택 앞에 섰다. 옛날 우물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이다. ㅁ자형으로 지어진 집에는 우물이 무려 3개, 대청엔 6·25 때 총탄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물은 복을 담는다는 의미가 있다는데 우물이 가진 복이 있어 총탄도 견디며 대를 이을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바깥말을 지키고 있는 돌기와집과 정미소, 안말에 있는 세 개의 복을 가진 ㅁ자형 가옥. 족히 10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있는 문화재적 가치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지 않길, 금토동을 기억할 수 있는 역사로 남기를 바란다.
발길은 금토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성남시 향토문화재 1호 정일당 강씨 묘로 향했다. 강정일당은 조선시대 후기 인물로 시와 문장에 뛰어난 인물이다. 해마다 성남문화원에서는 정일당 강씨를 기려‘강정일당 상’을 시상하고 있다.
변화하는 흐름에 따라 마을은 또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될 테지만 예로부터 먼 훗날까지도 여전할 청계산으로 눈길을 돌렸다. 청계산의 봄빛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생명의 기운을 가득 품고 바람 따라 파스텔톤 봄빛을 퍼트리고 있다.
청계산 국사봉 가는 길 철쭉 능선에 핀 철쭉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지만, 이미 져버린 철쭉의 흔적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이 길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을 최고로 환한 표정으로 배웅하려고 이르게 피었던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으로 위안했다.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보존해야 할 것에 대한 기원이 교차한다. 일찍피고 진 철쭉이 조금 남겨 둔 꽃봉오리가 곧 터질 것 같다. 새롭게 피어날 도시처럼.
※ 금토동은 시흥동에서 행정 관할한다.
취재 박인경 기자 ikpark9420@hanmail.net 취재 윤해인 기자 yoonh1107@naver.com 저작권자 ⓒ 비전성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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